세례를 받았다. 그리고 34세에 고향 아프리카 타가스테로 돌아가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37세(391년)에 히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. 그곳에서 마지막까지 약 37년간 주교로서 교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상적인 보고가 된 저서들을 썼다. 특히 도나투스파, 마니교, 펠라기우스파 사상에 대해 비판했으며, 펠라기우스의 자유의지론, 즉 구원에 있어서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사상을 비판했다. 410년 서고트족의 로마 약탈 상상도. 야만인들의 약탈 사건은 로마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. 아우구스티누스의 대작 《신국론》(De civitate Dei contra paganos)의 정확한 명칭은 ‘이교도들을 반박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’다. 이 책은 413–426년까지 13년간 저술되었는데,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410년 8월에 로마를 침입하여 약탈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. 북부 이탈리아에서 내려온 갈리아인들에 의해 로마가 기원전 390년에 7개월 동안 점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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